대학원생의 노동자성에 대하여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은 오랫동안 터부시되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노동자’로 정체화하는 일에도 많은 분들이 거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5월 1일이 ‘노동자의 날’이 아닌 ‘근로자의 날’로 명명된 것도 그러한 까닭일 것입니다. 그러나 직장 건강보험과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모두는 법적 노동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판례에서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를 노동자성의 기준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의료보험도, 실업급여도, 산재보상도 받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학계의 구성원들 역시 여전히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칭하는데 어색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학문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은 ‘학자’로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노동자’를 자처하기를 스스로 꺼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노동자’라는 이름에 얹힌 무게를 덜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족 안에서는 아들이자 딸이고, 조부모님께는 손주이며, 학교에서는 선배이자 후배, 직장에서는 동료, 친구에게는 친구입니다. 마찬가지로 ‘연구자’라는 정체성과 ‘노동자’라는 정체성은 양립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연구자가 고용 관계에 들어올 때 그에게는 연구자라는 정체성 위에 노동자라는 정체성 또한 부여되고, 부여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4대 보험과 같은 노동자로서의 법적 보호 또한 받지 못할 테니까요.

대학원생도 노동자입니다

“대학원생노동조합” 역시 대학원생이 어떻게 노동자가 되느냐는 숱한 질문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면 대학원생이 존재하지 않는 학교를 상상해봅시다. 대학원생 행정조교와 연구조교, 그리고 랩실에 출근하는 연구보조인력들이 사라진다면요. 대학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대학원생은 이미 오랜 기간 실질적으로 학교의 행정업무를 상당 부분 지탱해 왔습니다. 이공계의 많은 랩실에서는 실제 직장인과 별다를 바 없는 형태의 고용관계가 존재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 인건비는 많은 경우 ‘장학금’ 명목으로 지급되어 왔습니다(그리고 실질적으로 인건비인 이 ‘장학금’ 비율은 대학 순위를 올리는데 보탬이 됩니다). 이 때문에 대학원생은 무계약 노동과 이로 인한 열악한 노동조건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법적인 보호를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범하였으며 D대학의 조교 임금 체불 사건, S대학의 조교 구조조정 등의 사안에 대응해왔습니다.

대학원생노동조합은 실재적/잠재적 노동자인 대학원생의 인권을 보호합니다

대학원생의 고용과 노동권 문제 외에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현재 노동 중이거나 혹은 잠재적인 대학 노동자에 해당하는 대학원생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전방위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대학과 학계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아 법적 안전망이 부재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대학원생들은 폭언이나 모욕, 성폭력, 부당 지시 등 다양한 권력형 폭력에 노출되기 쉽습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만연한 대학원생 인권침해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나아가 학계의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구조를 개선시키기 위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No Union, No Right

최근 인분교수 사건, S대 교수의 자녀 논문 대필 사건 등 다양한 교수 갑질 사례가 불거지면서 대학원생의 인권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원생에 대한 온정이나 시혜의 손길은 해결책이 아닙니다. 대학원생의 노동에 대한 법적 보호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2017년 서울고용청은 D대의 행정조교에 대해 교직원과 같은 업무를 수행한다면 노동자성을 인정한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대학 측의 부당해고와 임금착취에 맞서 대학원생들의 힘으로 이룬 일입니다. 잠들어있는 대학원생의 권리를 깨우는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 함께 하겠습니다.


2019년 5월 1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고려대분회

카테고리: 성명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