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국면, 또는 ‘휘황한 아수라장’의 시간대와 우리는 어떻게 씨름할 것인가?


세상은 이미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녹아내리고 있다. 우리가 알던 세계가, 생태-사회적으로 더는 지속불가능한 임계 국면(crisis)에 다다른 셈이다. 이 세계의 보편표준으로 당연시되던 삶/앎의 형식과 감각은, 이런 상태에 관한 집단적 몰감각에 한 몫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 판단은 과장된 호들갑에 불과한 걸까?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상태를 세계적 규모의 ‘기후위기’ 국면이라 규정하자는 저간의 움직임만 봐도 그렇다. 이는 오늘날의 기후위기 과정이 이미 과학적 진위규명 차원을 넘어, 더는 부인불가능한 현실이 돼버렸음을 거듭 일깨우고 있다.

근래 들어 그 빈도와 강도, 규모 면에서 한층 더 맹렬해진 세계 곳곳의 불볕더위와 풍수해, 대규모 산불, 혹한 및 그로 인한 사망사고 소식들만 해도 그렇다. 이들 사건연쇄 과정은 이른바 ‘자연재해’란 종래의 전문지식 범주로는 이제 다뤄질 수도 없고, 다뤄져서도 안 되는 현실의 한복판에 자리해 있다. 이들 과정은 되려, 기후위기가 현행 세계경제시스템 전반에 걸쳐 고질화된 다중위기-불평등 국면과 어떻게, 얼마나 깊숙이 연동 중인지 시위하는 생태-사회적 봉기 움직임에 훨씬 더 가깝다. 지금 국면은 가령 세상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더란 말의 값어치마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파국론적 전망에만 붙들리는 건 섣부르다. 지금 일단 중요하게 다가와야 할 건, 무너질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생겨난 구멍들은 언제든 저절로, 그냥 생겨나는 법이 없더란 사실이겠다.

그런데 여기, 한국에서의 상황은 지금 어떤가. 기후위기 국면 조성에 세계적으로 한몫하는 주요 구멍 중 하나로 한창 각광받고 있다. 숨통처럼 솟아날 구멍에 관한 얘기는 시민사회 영역에서마저 그저 다큐성 농담인가 싶게, 세계 7위의 ‘기후깡패국가’로서 그 산업적 입지를 앞장서 다져온 셈이다. 23일 유엔 주최로 미국 뉴욕에서 열릴 기후위기 세계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석탄발전소 증설을 인가한 탓에 미국과 일본, 사우디 등과 함께 대표 연설을 못하게 된 건 그 단적인 예다. 이른바 ‘기적’이라고들 상찬받던 20세기적인 발전국가 경험의 아이콘으로서 한국은, 지금껏 기후위기 국면의 탈피가 아닌 회피의 제도화를 부추기는 쪽으로 거듭 진화했던 셈이다. 20세기적인 기적과 발전의 조건은 중장기적 시스템전환의 족쇄가 된 지 오래다. 이로써 기후위기 국면에 관한 전략적 대응과 그 운신의 폭도 크게 제약당해왔음은 물론이다.

기후위기 국면에 관한 비상행동 움직임은, 이처럼 세계 규모로 상호연루된 국지적 임계 상황들에 정치적으로 보다 더 민감해져야겠다는 긴급한 요청이다. 동시에 이는, 한국 특유의 심각한 다중불평등 과정과 효과적으로 씨름할 ‘정의로운 전환’의 저변들 또한 좀더 전략적으로 두루 조성해가자는 다짐이겠다. 이게 실제로 가능해지자면, ‘(제1)세계 속 한국’을 만든 20세기적 사회발전 형식과 그 독점기업주의 편향의 기본 모순 및 장기 유산이 오늘날 어떻게 더는 재도약의 계기가 아닌 퇴락, 부패 및 공멸의 조건이 되려는 중인지에 관한 다각도의 자기비판적 복기 작업은 필수불가결하다. 이런 작업을 고무하기에 적합한 학술장 재구조화 과정과 그 전략적 입지는 무엇일지 또한 학술적 입지에서 비상하고도 비중있게 전망, 궁리돼야 하는 이유다.

지금 당장이라도 요구, 추진가능한 것으로는, 오늘날의 기후위기 국면이 어떻게 밥상의 위기이자 사회적인 것의 위기, 삶의 위기로서 상호중첩돼 있는지에 관한 기초교양 및 전공 강의 프로그램을 대폭 확충하는 일이겠다. 이는 교양 및 전공 강의 규모를 줄이거나 대형화하는 최근 추세를 적극적이고 전략적으로 거스르자는 것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관련 기초교양 및 전공 강의 프로그램은 다양한 경로로 확충되거나, 기존 강의와도 실험적으로 융합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나란히, 그에 파생, 연동되는 학술연구 프로그램들에 관한 정책-제도적 지원과 저변 또한 중장기적 호흡을 갖추고서 다각화돼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대응 움직임들이 좀더 전략적으로 활성화될 계기를 이제라도 만들어가자. 21일 대학로 일대에서 있을 기후위기 비상행동 집회/시위는 분명 그런 계기의 일부이자 물꼬다. 그 이후로도 꾸준히 전세계 중고교생과 전력/에너지 부문 노동조합들의 호응, 주도 아래 벌어질 등교거부 및 기후파업 움직임들은, 아직 전략적 짜임새까지 갖추진 못했던 기왕의 대항정치적 전망들이 점과 선이 아닌 면으로, 면에서 입체로 그 면모를 쇄신해갈 주된 전기일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어떻게 따로 또 같이, 저마다의 자리에서부터 행동할 수 있겠는지 궁리해가자.

*2019년 9월 20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고려대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