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의 장막을 걷고, 연구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라

3월 8일은 1908년 미국에서 임금인상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궐기한 여성 노동자들을 기억하며, 세계의 ‘모든’ 여성과 연대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날이다. 전국대학원생노조는 자신의 자리에서 사람답게 살 권리를 외쳐온 여성들이 끌어낸 윤리적 진보에 감사와 존경의 지지를 보낸다. 우리 각자는 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점들은 각자의 삶이 구성되어있는 방식에 따라 서로 겹치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다르며, 마찬가지로 닮아있다. 그 닮음을 찾는 과정 안에서 함께 하는 여성들은 단지 어느 한 정체성의 목소리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상황적 약자의 목소리를 키우며 점점 커져 왔다. 여성의 연대는 역사적이며, 유기적이고, 끊임없이 아직 오지 않은 윤리를 향해 달려간다.

우리는 대학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형 인권침해와 성차별, 성폭력이 지도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친밀함으로 둔갑하는 상황을 익히 보아왔다. 지도교수에 의해 요구되는 친밀성은 교수와 학생 간에 지켜져야 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경계를 흐리고, 중층적인 피해를 발생시킨다. 학습, 장학금 수여, 조교 임용, 졸업 등 대학원생의 생활 전반에 지배적인 결정권을 교수가 쥐고 있는 대학의 현실은 대학원생이 교수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종용한다. 더욱이 여성 대학원생들은 중성적인 연구노동자가 아니라 ‘여성’의 역할을 기대받는다. 학과 행사의 간식 차림이나 연구실 살림 점검, 지도교수의 간식이나 식사를 챙기는 등 소위 돌봄 노동과 형식적으로 유사한 노동들이 여성 대학원생의 책임으로 주어진다. 반면 대외 행사에 찾아오는 외부 학자들을 의전하거나 학회에서 발표하는 등 연구자의 경력에 도움이 되는 기회들에서는 차순위로 밀려난다. 미투 이후 등장한 것처럼 보였던 펜스룰은 실상 언제나 존재했다. 여전히 남성 교수가 전임 교원의 절반을 훌쩍 웃도는 상황에서 남성 교수들은 여학생을 대하기 어렵고, 조심스럽다는 이유로 남학생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능력이 아닌 친밀함을 근거로 주어지는 기회들로부터 여성 대학원생들은 또다시 배제된다.

전국대학원생노조는 전문적 역량을 키우기 위해 찾아간 교육의 장에서조차 여성으로 환원되고, 자신의 실력을 키우고 증명할 공정한 수단을 찾기 어려운 대학원생들에게 연대를 보낸다. 당신들과 우리가 해왔던, 평가받지 못한 노동과 성취에 격려와 위로의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고, 성별이 가리던 장막을 걷을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여성 연대가 해왔던 역할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연구노동자로서 인정받고 그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기준에서 성별이 영원히 삭제되는 날까지 우리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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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8일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