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강태경 (2018) 대학의 변화와 하나의 직종으로서 대학원생

작성자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작성일
2018-10-28 16:00
조회
416
강태경. (2018). 대학의 변화와 하나의 직종으로서 대학원생. 진보평론 발언대.

 

대학의 변화와 하나의 직종으로서 대학원생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수석부지부장 강태경


 

대학원생들은 왜 스스로 노예라 부르는가?


“우리가 학생인 줄 알아? 착각하지 마. 우린 노예야.” 웹툰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에 등장하는 대사로, 사연의 제보자가 직접 적어줬던 말이다. ‘대학원생은 왜 스스로 노예라고 부르는가?’ 이것은 필자가 대학원 석사과정에 다니면서 가장 깊이 고민했던 질문이었다. 대학원생들을 만나다 보면, 물론 전부 다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노비 혹은 노예라고 칭하는 사례는 그렇게 찾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등교육의 마지막 과정을 밟고 있는 수혜자들이 자조 섞인 웃음으로 자신을 노예라고 부르는 이 모순적인 상황은 무엇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까?
필자는 그 이유가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자로 대우받지 못하고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에 공감했던 다른 대학원생들과 노동조합을 결성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다. 본 글에서는 그 결론에 도달하게 된 과정에서 마주했던 문제점을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제시해보겠다. 이에 대한 해법의 고민은 이 글을 읽는 연구자들이 함께 만들어 가리라 기대한다.


2. 사례의 특수성을 넘어 공통의 문제로 접근하기


대학원 문제는 ‘케바케’라고 여겨지기 일쑤이다.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연구 분야를 포괄하고 있을 대학원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당연히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차이에 집중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그건 해당 연구실 내지는 교수의 특수한 문제라고 여겨지기 쉽다. 이런 접근은 개별 사안에 맞춤형 해법을 고민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구조적인 답을 주기에는 매우 어려우며, 결국 대학원생들 입장에서는 대학원 자체를 바꾸기 보다는 개별 교수의 호의에 기대거나 좋은 학교, 좋은 과를 잘 골라야 하는 접근으로 축소되고 만다.

하지만 최근의 조사 결과들이 축적되면서 대학원생의 문제들의 유형이 점차 그 윤곽을 드러내면서 정리되고 있다. 대략 열거해본다면 다음과 같다.

 

1) 금전적 착취


대학원에서 제보를 받을 때 가장 황당했던 문제는 대학원생 인건비를 갈취하는 것이다. 임금이나 장학금 등 대학원생의 몫이어야 하는 돈을 뽑아서 교수에게 상납하거나 대학원생의 통장에 보관하고 있으면서 필요한 물건을 사와야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벼룩의 간을 내어먹는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 문제는 대학원생들에게 경제적 타격이기도 하며 인격적 굴욕감을 준다.


(1) 부적절한 연구실 공동자금(소위 ‘풀링pooling’)


부적절한 연구실 공동자금은 대학원생이 돈을 모으거나, 프로젝트 인건비나 근로장학금을 받으면 대학원생이 일부 금액만 갖고 나머지 금액은 다시 인출하여 연구실의 공동계좌를 만들어 운영하는 유형이다. 2017년 카이스트 󰡔연구환경실태조사󰡕에서 조사가 되었는데, 카이스트 대학원생 응답자 중 7.95%가 독립계좌가 운영된다고 답했고, 68.53%가 아니라고 답했으며, 23.52%가 모른다고 답했다. 그중 1천만 원 ~ 5천만 원 미만 규모는 11건, 5천만 원 이상의 금액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4건이 있었다. 풀링은 연구실 재정의 원천인 프로젝트과제가 유동적이라는 구조적 문제와도 연결되어있다. 즉 연구비 수입이 일정치 않은 상황에서 돈을 모아 일종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볼 여지는 있다. 즉, 프로젝트에 포함되지 못한 인원에게 장학금 및 생활비를 나누어주고, 연구실에서 공동으로 사용할 물품을 구매하는 것에만 투명하게 사용되는 긍정적 경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원생-교수 간의 불평등한 관계가 풀링을 심각한 착취로 둔갑시킬 수 있다. 풀링 된 연구비가 교수의 사적 목적으로 사용되고(카이스트 조사에선 세 건이 이에 해당된다) 대학원생이 이를 문제제기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면 풀링은 결국 교수의 제2의 통장이 되고, 대학원생의 실질적인 수령금액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자신의 인건비 통장에 들어온 금액을 현금으로 뽑아서 상납해야 하는 대학원생은 심각한 분노와 굴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2) 장학금 쪼개기


풀링과 유사한 인건비 착취의 사례로 장학금 쪼개기가 있다. 교수에게는 통상적으로 자신의 연구를 보조하는 1인의 대학원생 조교가 배정되고 그는 일정 금액의 근로장학금을 받게 된다. 장학금 쪼개기는 교수가 복수의 대학원생 조교를 뽑아 그들에게 1인분의 장학금을 나누어주는 것이다. 1인분의 조교 업무를 여러 명에게 골고루 나누고 그 분할 금액을 합의한다면 논란의 여지는 있더라도 큰 문제는 아닐 수 있다. 문제는 업무 자체가 뻥튀기되거나 고르게 배분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뽑은 조교는 3인이고 각각 1/3의 장학금만 분배되지만 업무는 1인분의 몫 씩 배분된다면 대학원생을 과하게 착취하게 된다. 혹은 3명 중 1인에게 업무는 집중되지만 3인이 장학금을 나누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대학원생들 간의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3) 논문 심사 거마비와 부당 선물관행, 티켓 강매


예체능계에서 그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졸업을 위해서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들에게 각각 거마비의 명목으로 수십만 원의 금품을 주고, 심사 후에 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한다던지, 명품을 선물해야 졸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사례이다. 무용이나 음악처럼 공연을 하는 전공의 경우, 교수의 공연티켓을 매진시켜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으며, 아예 품앗이처럼 다른 대학의 학생들이 서로 좌석을 채워주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한다.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거마비나 선물을 빙자한 갈취를 상당히 효과적으로 없애서 대학원생들의 부담을 많이 덜어주었다는 평이 일반적이나, 과거에 워낙 악습이 심했던 곳은 그 정도가 완화되었을 뿐 문제가 근절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2) 연구비 횡령 혹은 기타 연구저작권 침해 등 연구부정에 동원


대학원생 조교들이 연구실에서 많이 하는 업무 중 하나가 연구비에 대한 행정처리 업무다. 프로젝트 보고를 위해 재무 상황을 정리하고 양식과 요구사항에 맞추어 서류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연구비 횡령에 대학원생들이 종종 동원된다. 이들은 프로젝트의 영수증처리 업무를 하면서 서류를 조작하는 업무에 동원되고, 원치 않은 공범이 된다. 특히 상급자 한두 명의 개인적 착복을 위해 대학원생이 서류를 조작하는 업무에 매달려있다 보면 ‘내가 이러려고 대학원에 왔나’하는 자괴감에 빠지고 학문적 열정이나 동기가 사라지는 것은 다반사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고발하면 자신이 속한 연구실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내부고발은 보통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물론 꼬리가 길면 밟힌다. 노조에서 언론보도를 통해 파악하고 있는 연구비 횡령과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20여건이 되는데, 문제가 되는 금액이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14억 이상도 있다.

연구저작권 침해는 개선되고 있으나 고질적인 문제다. 논문의 대필강요, 혹은 연구성과 가로채기, 저자명의 끼워 넣기 등이다. 최근 대학 교수 중 자신의 자녀의 이름을 공동저자로 끼워 넣은 사례를 조사하여 무더기로 적발된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제는 신진 연구자들의 성과가 온전하게 평가될 기회가 사라지는 문제도 있지만, 학술성과물에 대한 신뢰도를 저하시키고, 연구자공동체 전체의 피해로 돌아오기 때문에 연구자들간의 꾸준한 자정이 필요한 일이다.


3) 인권침해(폭행/폭언/성폭력)


대학원에서의 폭행과 폭언은 인분교수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그 정도의 극단적 폭행이 아니더라도 상습적인 폭행에 시달리는 대학원생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발길질로 정강이를 차거나(조인트 까기), 손찌검, 대학원생에게 물건을 집어던지는 경우는 필자가 직접 들었던 폭행의 사례이다. 카이스트 󰡔연구환경실태조사󰡕 중 2017년은 전년도인 2016년도 보다는 소폭 개선되었지만 폭언/폭행/성희롱·성추행을 보았던 사람들이 전체 중 19.6%를 차지한다. 이 중 가장 큰 비중은 폭언(16%)이고, 그 다음이 성희롱·성추행(3%)이며, 폭행(1%)이 가장 비중이 낮았다. 하지만 약 20%라 하는 수치는 여전히 폭행과 폭언이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폭언은 ‘인신공격/무시/비하’(56.14%)가 다수이나 ‘학위/논문 저자 등 연구실적 관련 사항을 담보로 한 협박’(14.32%)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비중을 차지한다. 남성의 경우 성희롱/성추행을 겪은 이가 1%에 불과하지만, 여성응답자 중에서는 13.51%의 비중으로,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인권침해의 가해자는 ‘지도교수’(36%)와 ‘지도교수 외 다른 교수’(16%)로 교수가 약 절반이었고, ‘연구실 동료’(33%)와 ‘연구실 외 다른 학생’(12%)으로 지도교수와 연구실 동료가 비슷한 비중이었다. 단지 교수와 학생 사이의 갈등을 넘어 연구실 자체의 위계적 질서도 대학원 내의 부조리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4) 사적 동원, 재능기부 강요, 과다 업무 부과, 최저시급 위반


일을 하고 있는데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일을 하게 된다. 게다가 ‘교육’이기 때문에, 혹은 ‘너에게 도움 되는 기회’라는 이유까지 붙으면 시켜도 되는 일과 시키면 안되는 일의 경계, 과로와 아닌 것의 경계는 더욱 흐려진다. 사적 업무에 동원되는 사례는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 중 포커스 그룹 인터뷰에서도 확인되며, 2017년 카이스트 원총의 조사 결과에서도 ‘지도교수님의 사적인 업무 동원여부’에 대해 12.49%가 있다고 응답했다. 업무 동원의 이유로는 개인사업(135건), 학회관련 업무(97건), 심부름(79건), 가족행사(49), 원치 않는 행사 참여(36건) 순이었다.

꼭 교수의 사적 업무가 아니어도, 조교 중 일 자체를 과하게 부여받는 경우가 많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는 ‘조교(연구조교/교육조교)로 일하면서 과도한 업무를 한 경우가 있다’라는 질문에 ‘그렇다’ 19.2%, ‘정말 그렇다’ 10.9%라는 결과가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답변 중에 ‘전혀 그렇지 않다’는 11.1%, ‘그렇지 않다’는 23.6%라는 결과도 같이 나왔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양극단이 혼재된 이유는 조교들의 노동이 전부 장학금이라는 제도 하나로 묶여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장학금의 본래 취지는 학업에 열중할 수 있도록 지급되는 금액인데 이것이 근로장학금이라는 제도를 통해 임노동에 해당할 사항도 장학금이라는 방식으로 지급되다 보니 정말 장학금 같은 사례부터 과중한 노동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학원에서의 노동이 제대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최저임금’이 지켜지느냐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카이스트 대학원생에게 ‘교내수입의 최저시급 여부’를 물으니 ‘예’는 34.34%에 그쳤고, 63.15%가 ‘아니오’라고 답했다. 카이스트는 상대적으로 프로젝트 등 교내 일거리가 많은 학교인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인문사회계에서는 학술지 간사들의 과로와 턱없는 임금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한 달에 1~30만 원(그나마 안주는 곳도 있다)을 받으며 간사 일을 시키는 방식은 이제 끊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노조에서는 상당히 높다.


3. 하나의 직종으로서 대학원생


대학원생노동조합이 그 시작을 알린 뒤 초기의 반응은 환대에 가까웠다. 인권침해에 맞서서 대학원생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것에 많은 응원이 달렸고, 그 힘을 받아 힘차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원생이 어떤 의미에서 노동자인지, 어디까지 노동자인지에 대해서는 논의할 거리가 많다. 즉, ‘불쌍하다’는 의미에서 대학원생의 노동조합 결성은 응원하지만, 과연 노동자가 맞느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온전한 합의가 있지 못하다. 이것은 대학 내의 노동시장의 변화와 연결이 되어있다. 대학이 기업화되면서 대학원생이 연구노동자의 성격이 점점 확대되어왔다. 과거엔 노동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들이 지금은 노동으로 변하는 과도기의 단계에서 안전망이 없다 보니 대학원생들이 겪는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필자는 대학원생의 노동권의 근거로 두 종류의 주장을 제시한다. 하나는 좁은 의미의 ‘노동’이고, 다른 하나는 넓은 의미의 ‘노동’이다. 첫째, 보다 좁은 의미에서의 노동자성에 대한 주장이다. 즉, 조교, 간사, 연구원, 강의 등의 업무를 하는 대학원생들을 노동자로 보자는 의미이다. 이들은 굳이 신분이 대학원생이 아니었다면 이미 노동자로 인정받을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대학원생이니까’라는 말처럼 신분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된다면 이들은 노동자로 대접받아야 한다. 바꿔서 말하면, 학생이 아닌 사람에게 그 일을 시키려 할 때 당신은 근로기준법을 지켜야 한다. 일하는 당사자인 대학원생들이 제일 잘 안다. 전국의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대학원생들은 압도적 과반이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한다. 2014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의 조사에서 58.2%가 자신을 “학생근로자”라고 답했고, 4.8%는 아예 “근로자”라고 답했다.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와 57.8%가 자신을 “학생+근로자”라고 답했고, 8.3%가 “학생이라기보다는 근로자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현실에서 대학원생은 스스로 이미 노동자라고 인식한다.

둘째, 대학원생이 연구자로서의 경로를 시작하였다면 연구가 업인 노동자로 간주하고 그에 입각한 제도적 개선과 노동권을 부여해나가자는 주장이다. 이 부분은 특히 논쟁이 뜨거울 것으로 안다. 우선은 연구를 과연 노동으로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이 가능하다. 반대자들 입장에서 연구는 노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행동이라 주장하며 연구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이는 지식이란 것을 무엇으로 볼 것인지, 혹은 지식의 효과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갈릴 수 있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과연 자신이 받은 만큼의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생산하느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즉, 과연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노동권이라고 주장하면서 무언가를 누리려 할 때, 자신은 생산이라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그 부는 다른 누군가의 생산에서 전유해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첫째의 좁은 의미에서의 노동자성을 우리 노조는 강력하게 주장하는 입장이며 쟁취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의 넓은 의미에서의 노동자성에 대해서 노조는 그것을 지향하고 있으나 조합원들의 보다 많은 참여와 논의를 통해서 그 구체적 경계를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을 생산하고 싶은 입장이다. 짧게나마 연구가 넓은 의미의 노동이라는 주장을 옹호하자면, 우선 지식 역시 인간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며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사무노동과 육체노동이 결합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대표적으로 실험이 많은 생명과학분야는 많은 노동 없이는 지식생산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지식인 고유의 활동으로 설명됨으로서 노동과 다른 차별화 하는 주장 보다는 다른 노동자와 본질적으로 유사하게, 유무형의 재화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지식이란 공공재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노동이라 칭하는 것이 보다 보편적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타인의 생산에서 전유한다는 비판은 충분히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견, 지식생산 자체가 새로운 부를 창출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또한 지식생산은 반드시 부가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생산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연구노동자가 지식을 생산하는 동안 누군가가 그를 부양하기 위한 직접적 생산에 종사해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연구노동자가 필요하며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대우를 해줄 것인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지식을 생산하고 있는가는 추가적인 논의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원생을 연구노동자로 서술하려는 이유의 가장 큰 이유는 대학원에서의 새로운 인간관계를 정립시키고자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제도로는 개별 교수가 중소기업의 사장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사학재단의 권력은 깨지 못한 상태에서 도제식 사제관계는 유지되고 기업화와 양적 팽창을 가속화하다보니 권위주의와 금전적 착취가 이중적으로 발생하는 봉건적 구조가 만들어졌다. 본부는 간접비를 받고 영지를 떼어주는 영주가 되어버렸고, 실제 운영은 학과와 교수에게 일임하는 식이다. 하지만 대학원문제의 근본적 책임은 대학본부로 수렴해야 한다. 이 싸움이 교수와 대학원생의 갈등으로 초점이 모아질수록, 구조적 변화 보다는 앞서 말한 좋은 연구실 골라가기로 그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대학 본부가 대학원생들을 연구노동자로 인정하고, 그에 입각한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로 변화할 때 대학원의 연구역량도 상승하고 대학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4. 구체적인 연구노동의 자기 서술이 이루어지기를


대학원의 문제를 접근할 때 최고의 난점은 바로 대학원의 문제점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일단은 고립된 연구실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만나본 범위에서만 하더라도 아직은 차마 문제를 드러내지 못하는 대학원생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대학원이 문제적이라는 지적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만족할 만한 분석이 나왔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인분교수사건과 8만대장경 스캔노예사건, 성폭력이나 인권침해를 당한 대학원생들의 사건이 터지면서 대학원생의 인권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대학원 사회에서의 지각변동이 조금씩 진행되고 있는 상태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필자는 이 지각변동이 기회라고 생각하기에 간략하게나마 소개를 드린다.

문제를 집단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최근 활발해지고 있다. 대학원에 대한 실태조사가 근 몇 년 사이에 있었고, 웹툰이나 팟캐스트, 온라인/오프라인 공동체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학원생들의 이야기가 유통되고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앞에서 진행한 분석도 이 자료들에 빚지고 있다. 우선 조사의 차원에서 본다면, 개별 대학원총학생회의 자체적인 실태조사가 시도되었고, 서울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와 카이스트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에서는 2012년 이후 주기적으로 자료가 만들어지고 있다. 비록 조사대상이 한국 대학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연구환경을 가진 대학원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자료를 해석할 필요는 있다. 대학 외의 기관에서 나온 자료에서는 대통령청년직속위원회는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의 도움을 받아 진행한 설문조사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행한 전국 조사가 있었다. 이 두 번의 전국적인 설문조사는 지금까지 있었던 자료 중에서 한국에 있는 대학원생들의 현실을 가장 광범위하게 반영한 설문조사이기 때문에 대학원의 현실을 분석하는데 중요한 자료다. 전부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다.

최근에 대학원생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공동체가 생기고 있고 이는 고무적으로 해석할 만하다. 인문학 연구자들로 이뤄진 ‘인문학협동조합’,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크워크(ESC), 역사전공자들로 이뤄진 ‘만인만색 네트워크’는 대학원을 포함한 연구공동체를 개선하자는 문제의식을 갖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대표적인 전국적 조직이다. 물론 총학생회 같은 전통적인 조직들도 빼놓을 수 없다. 연구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공공연구노조에서도 대학원생들의 노동권을 주장해왔다. 대학원생 시기를 거쳤던 연구노동자들이 보기에도 대학원내 노동의 문제는 지식생태계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인터넷에서도 논의는 커가고 있다. 페이스북의 ‘대학원생을 살리는 해외 대학원 제도’라는 커뮤니티에서는 해외의 좋은 사례들을 연구자들이 서로 소개하고 있고, 대학원생과 대학원생 및 연구자들의 구직사이트이자 커뮤니티인 ‘Allbrain’, 생물학 연구정보 센터 ‘Brics’ 같은 곳에서도 대학원에 대한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이런 학술공동체들과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연대하면서 활동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앞으로도 더욱 논의가 심화되어서 대학원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논의가 심도 있게 발전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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