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김태현 (2018) 대학 내 위계형 성폭력: 대학 미투 운동의 양상과 쟁점을 중심으로

작성자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작성일
2018-10-28 16:06
조회
267
김태현. (2018). 대학 내 위계형 성폭력: 대학 미투 운동의 양상과 쟁점을 중심으로. 문화과학 95 100-116.


“대학 내 위계형 성폭력, 이제 그만”


위계(位階)와 위계(僞計) 중 사건을 수식하는 법률 용어로 사용되는 것은 “상대방의 오인, 착각 또는 부지를 일으키게 하여 이를 이용하는 것”의 의미를 담고 있는 후자의 표현이다.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나는 성폭력 사건들은 보통 ‘권력형 성폭력’, ‘위력에 의한 성폭력’, ‘위계형 성폭력’으로 수식되고, 이 중에서 ‘위계형 성폭력’을 검색하면 대부분 대학과 관련된 내용이 뜬다. 여기서 사용되는 ‘위계’는 맥락상 후자가 아닌 전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기존 법률 용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저항의 의미로 사용했다는 글이나 연구는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위계(位階)형 성폭력’은 규정된 것에 대한 무지와 그 무지에 기반을 둔 감각적 선택으로 보이며, 법률 용어의 존재를 인지하는 순간 통용성을 잃고 ‘권력형 성폭력’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감각적 선택은 대학의 구조적 맥락을 가장 잘 드러내 보이고 실질적인 변화의 동력을 이끌어 내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권력은 특정 계층에 내재되어 있는 속성이 아니라 위계관계에 놓인 주체에 의해 획득되는 속성이다.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의 강도와 범위는 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조직 문화의 형성 과정에서 결정되고, 일련의 과정은 다시 위계구조에 녹아 조직들 간의 차이와 특수성을 부여하는 근거로 자리한다. 권력형 성폭력이 ‘위계(位階)형 성폭력’으로 규정되어야 설명될 수 있는 대학 문화의 특수성은 구성원들로 하여금 기존의 운동 형태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연대 공동체를 형성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위계구조를 구체적인 타격 지점으로 삼는 것은 억압받는 주체를 드러내는 ‘정체성의 정치’에서 동등한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정치적 주체화’ 과정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미투 운동이 연쇄적·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대학은 이미지와 실제의 괴리가 굉장히 큰 조직 중 하나다. 대학은 순수하고 숭고한 ‘상아탑’으로서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비민주적 행정 제도와 불평등한 위계 구조로 운영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전통적 관념과 엘리트주의, 그리고 기업화로 인해 형성된 대학 특유의 ‘교수-직원-강사-학생 순의 피라미드형 위계 구조’는 대학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노동 착취를 비롯한 각종 사건들을 치밀하게 은폐하는 기제로 존재해왔다. 신고와 판결 과정에서 단지 위계 관계에 놓인 것만으로도 피해자의 신고가 억제되고 가해자의 권리가 우선적으로 보호되는 점은 대학의 위계 구조에 불평등을 야기하는 권력이 얼마나 고착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기에 절차와 권한으로 보호되고 용인되는 왜곡된 권력의 작동 양태를 끊어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제도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발생했던 사실이 은폐되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며 부당한 권력이 작용하는 토대 자체를 무너뜨리는 작업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대학 미투 운동의 양상을 분석하는 것은 위계구조의 형태와 ‘위계(位階)형 성폭력’을 둘러싼 대학 안팎 주체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리고 쟁점을 분석하는 것은 사건을 은폐하려는 주체와 드러내려는 주체 사이의 현실적 대립 지점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바꿔 말하자면 양상을 분석함으로써 투쟁 전반의 구도를 파악하고, 쟁점을 분석함으로써 현재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핵심 사안이 무엇인지를 확인한다는 의미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 이 글에서는 ①대학에서 발생하는 위계형 성폭력과 공동체의 대응, 대학의 실태와 사회적 움직임을 살펴보고, ②대학 안팎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발생한 장해 요인들을 살펴보려 한다.


2. 대학 미투운동의 양상



1) 위계형 성폭력


대학 내 성폭력 사례 및 경향을 조사한 여러 자료들이 존재하지만 아직까지 완벽하게 파악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2018년 초 교육부가 제출한 「2013~2017 대학 내 성범죄 발생현황」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국내 대학에서 적발된 성폭력 건수는 320건에 달한다. 학생 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성범죄가 214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교수가 가해자인 경우는 72건, 교직원 24건, 강사 9건, 조교 1건순이었다. 이 가운데 가해자에게 징계가 내려진 사건은 학생 134건(62.62%), 교수 51건(70.83%), 직원 (70.83%), 강사 9건(77.78%)으로 보고되었다.
이 통계가 함의하는 내용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성폭력 사건의 많은 경우가 동일 집단 내에서도 발생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동일한 직업적 위치에 놓인 구성원 사이에도 권력의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단체 카톡방’이나 신입생 OT, 학과/동아리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이 가장 빈번함에도 불구하고 징계 과정이나 언론에서는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만을 중요하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 위계 관계를 단순히 주체가 위치한 계층, 예를 들면 학생, 교수 등 직업의 차이로만 일반화해 바라보는 것은 대학의 구조적 모순과 동일 계층 내는 성폭력 사건을 전부 드러내지 못한다. ‘자리한 위치=권력, 권한의 우위=학문 수준의 우위’의 형태로 서로 치환되는 대학의 위계 구조는 학업 활동 외의 어떤 행위라도 스스럼없이 행할 수 있도록 하는 권력의 정당성을 특정 구성원에게 부여한다. 학위 과정에서 교수가 갖는 가시적 권한과 학문공동체 내 비가시적 영향력에 의한 권력까지 포함시켜 바라보아야 대학 내 성폭력 사건을 포괄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교수-학생 사이의 대결 구도가 아닌 대학의 위계구조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다.
두 번째는 언론 등에서 가장 부각되어온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빈도가 교육부 자료에서는 가장 높게 보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폭력을 당했던 학생의 90%가 “해결 안 될 것 같아”(42%),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42%), “비밀보장이 안 될까봐”(37%) 등의 이유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설문 결과를 볼 때 교육부 자료가 얼마나 불명확한 자료인지를 알 수 있다. 신고되지 않은 사건은 계상되지 않았고 징계 수위가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은 교육부 보고의 명백한 한계를 보여준다. 여러 계층 중에서도 대학원생은 교수와의 극단적인 종속 관계로 인해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생은 교육을 받는 학생으로서의 정체성과 교수/대학의 업무를 보조하는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지닌다. 논문 심사를 통한 학위 여탈권과 각종 추천권 그리고 조교 임용권 등이 교수에게 독점적으로 부여되어 있다는 점은 피해자가 신고를 머뭇거리게 만드는 요소다. 게다가 신고를 하더라도 제대로 처벌되지 않거나 가해자의 권한 남용에 대해 보호받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들은 피해자로 하여금 신고를 더욱 단념하게 만든다.
이를 구체화시키면 ‘2차 피해’의 문제와 맞물린다. 대학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는 주로 ▴교수의 권한을 악용하여 협박과 회유를 가하는 형태와 ▴징계위, 진상조사위 등에서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 등의 형태로 나뉜다. 전자의 사례는 ①강의 성적과 장학금, 논문 지도·심사 등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②지도교수 변경 신청을 묵살하거나, ③직접 혹은 주변인을 통해 협박·회유·거짓 증언을 하거나 ④무고·명예훼손을 빌미로 역고소를 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압박을 가해 피해자를 압박하는 유형이다. 가해자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2차 피해는 피해 당사자들의 고발을 위축시키고 입지를 위태롭게 하여 사건을 축소·은폐한다. 후자의 사례는 ①상담사, 교수진이 피해자를 협박·회유하거나 ②비공개로 유지되어야 할 피해자의 신상이나 사건 처리 경과를 유출하거나 ③사건 심각성에 비해 낮은 수위의 징계를 내리거나 처벌하지 않는 방식으로 발생한다. 대학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학당국과 편파적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한 인권센터는 각기 다른 목적과 유형으로 2차 피해를 발생시킨다. 전국적으로 비슷한 양상으로 발생하는 2차 피해는 대학 기구가 가해자를 비호하는 반면 피해자의 취약한 입지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2) 연대와 대응


미투 운동을 통한 고발은 대학별로 구성된 ‘대나무숲’이라는 독특한 공간을 통해서 이뤄지기도 했다. 대나무숲은 대학 구성원들의 일상·사건·사고가 익명으로 제보되는 SNS 공간이다. 제보된 내용은 운영진의 필터링 기준하에 게시되며 이용자들은 댓글과 공유를 통해 토론을 하거나 사건을 알린다. 개인 정보 공개에 따른 위험성이 존재하는 탓에 실명이나 소속을 드러내는 단어는 삭제된 채 게시되는데, 알려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간주되는 사건의 경우에는 이용자들이 직접 내용을 유추하거나 운영진에게 공개 요청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성폭력 사건 제보에 대해서 구성원들은 수많은 댓글로 피해자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기자나 학내/외 단체에서는 연락처를 남기며 피해자 신분 보호와 지원의 의사를 남기며 사건을 확장시켰다.
사건 해결을 위한 움직임은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모임’, ‘성폭력 사태 해결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국문학과 사건대책위원회’ 등 피해자 중심의 대응 조직과 총여학생회, 페미니즘 소모임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대학원 총학생회의 부재나 신원 노출의 우려 등으로 인해 상당수의 대학원생은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을 통해 대응하기도 했다. 이렇게 형성된 대응 조직들은 서로의 사안에 연대하며 더 큰 연대 공동체의 형태로 사건에 대응했다. 활동주체가 개인에서 단체로 확장됨에 따라 몇 가지 효과가 있었다. 첫째, 언론 대응, 집단 행동의 기획과 실행, 외부 상담기구 연결, 법적 조력 등 실무적 역할을 분담할 수 있었다. 실무역량의 확대와 전문화는 목표와 구호로만 존재해 온 제도 개선을 실질적으로 이뤄낼 힘을 공동체에 부여했다. 둘째, 첫 번째 효과를 통해 조직들은 가해자 및 수사기구의 사건 은폐 시도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사건의 신고를 위축시키고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를 좌절시키는 2차 피해는 그동안 피해자 개인의 심리적 영역에만 자리해왔다. 하지만 가해자와 수사기구의 사건 은폐 시도들은 공동체 내부와 외부로 공유되면서 더 이상 피해자 개인을 위축시키는 요소가 아닌 가해 사실을 더 확고히 규정짓는 요소로 자리했다. 가해자의 개인적인 사건 은폐 시도들은 징계 심사, 법리 해석에서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고 수사 기관의 편파성은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되었다. 실제로 제도 개선을 이뤄냈는가에 대한 답변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건을 은폐시키려는 권력자들의 시도를 무력화할 수 있는 구도가 형성되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한 변화 지점이다. 그 무엇도 은폐할 수 없는 사회로의 진입은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가 스스로에게 해악을 초래하는 데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3) 두 얼굴의 대학


“H대에서는 미대와 음대 교수가 성희롱과 추행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고, 교내 성희롱심의위원회가 총장에게 ‘파면’을 권고했습니다. 징계수위 결정은 교원징계위원회를 거쳐 이뤄지는데, 학생들은 절차 진행이 신속하지 않다고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 <H대 총학생회장> 학교 본부는 성폭력문제 해결을 위한 책임을 직시하고 징계위와 후속대응에 박차를 가해야할 것입니다. (...) <대학 관계자> 규정이 그렇게 돼있어 일정이나 내용·절차는 (학생들에게) 공유할 수 없고, 규정에 따라 굉장히 신속하게 (절차를) 진행 중입니다."

대학이 사건을 처리하는 절차는 일반적으로 인권센터(상담, 사건 접수), 심의위원회(수사), 징계위원회(판결)의 세 단계로 구성된다. 객관적으로 수사하고 판결할 책임을 지닌 이 절차들은 지금까지 미투 운동의 대척점에서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회적 이미지와 제도적 강제, 대학 구성원들의 요구로 인해 인권센터를 설치하는 대학의 수는 점차 늘고 있는 추세지만 그 실효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설치된 인권센터들 가운데는 센터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예산과 상담·수사 인력의 전문성, 운영의 독립성을 확보하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만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성의 부재는 상담·수사 과정에서의 피해자 협박·회유, 비공개 정보의 유출 등으로, 독립성의 부재는 편파적인 수사와 소극적 징계 권고로 나타난다. 대학 구성원의 인권센터에 대한 신뢰는 이렇게 발생한 2차 피해들로 인해 무너졌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대학 위계구조가 심화되어온 과정과 현 대학 운영 실태를 짚어보아야 한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대학 구성원의 역할이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연구 정체성이 박탈되면서 교수에게 관리자 정체성을 더 강하게 요구했다. 대학에서 행정부서의 장(처장급 이상)을 무조건 교수가 맡게 되어 있는 점과 학생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대부분의 권한을 교수가 지니는 점은 대학 운영의 실무적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보여준다. 공고한 교수 사회의 정치적 입지와 그 내부에서 형성된 ‘잘못된 동업자 문화’는 그 자체로서 교수 개인이 받는 위협 요소에 대한 방패와 휘두를 수 있는 무기의 역할을 한다. 대학이 사건 처리 기구를 운영하는 데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대학 본부는 단순히 ‘관찰자’ ‘수사관’ ‘심판자’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 위계형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범죄를 유지, 재생산하면서 그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로 전가하는 태도는 심히 이중적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독립성과 전문성 그리고 원칙의 균일성에 기반한 절차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대학이, 구체적으로는 인권센터, 심의위원회, 징계위원회에 속한 주체들이 지닌 책임은 그들이 사건을 공정하고 올바르게 대해야 되는 이유다.


4) 사회 변화의 조짐: 정부, 국회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은 실질적 변화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척도가 된다. 기득권의 입장을 더 대변하는 성격의 제도권이 지닌 한계로 인해 이들의 진정성과 지속성은 꾸준히 의심될 수밖에 없지만 이들의 움직임이 문제해결 과정에서 발생하는 쟁점을 효과적으로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까지 부정하기는 힘들다.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않는 입법·행정 기관은 보통 여론을 좇는 경향이 있다. 교육계 미투 운동이 확산되면서 이들 기관도 대학 구성원들의 활동과 맞물려 움직였다. 교육부는 3월 ‘성폭력 근절 추진단'을 구성해 교육기관 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특별수사와 전수조사, 그리고 정책 개선방안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8월 14일에는 그동안 국회에 계류되어 있던 교육 분야 성희롱·성폭력 관련 법률의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교육부에서 주도적으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교문위’)는 정부기관 압박과 관련 법안 발의를 통해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담론을 형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4월 10일, 11일 유은혜 의원실, 노웅래 의원실의 주도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대학 구성원들로 하여금 교육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제도 개선안을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3. 대학 미투 운동의 쟁점


우리의 운동이 위계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할 때 위계구조를 유지하려는 집단은 대척점에 서 있는 주제이고, 위계 구조의 변화를 야기하는 제도적 절차들은 대척 구도를 만드는 핵심 사안이다. 쟁점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요구안’으로 규정할 수 있는데, 이것은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이 절에서는 가해자 처벌 절차, 그리고 온전한 처벌을 가로막는 절차에 대한 쟁점을 주로 서술할 것이다.


1) 대학 내 쟁점



(1) 교원 징계 시효


“교육부가 K대에서 제기된 성비위 의혹 '미투‘사안을 조사해 교수가 대학원생을 성추행한 사실을 적발했다. 하지만 해당 교수는 징계시효가 지나 중징계가 아닌 ’경고‘통보를 받았고, 사건 축소 의혹을 받은 다른 교수들도 경고 외에 별다른 처분을 받지 않게 됐다 (...) A교수의 행동은 중징계 사유지만 교육부는 징계시효(당시 관련 법상 2년)가 지나 경고 조치하기로 했다.

위계구조하에 위치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공개하는 것은 굉장히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이다. 학교를 떠난 후에 신고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고가 반드시 징계시효 내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고발의 결심은 법 조항과 가해자의 상황이 아닌 피해 당사자의 생활과 의지에 우선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건 발생과 신고 시기 사이의 간극은 교원 징계시효의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 묻는다. 징계 시효는 ‘시간 흐름에 따른 사실관계의 왜곡을 방지하고 징계 비행자가 무한정의 신분적 불안정 상태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취지 혹은 기대의 보호’를 위한 것으로 널리 인용되고 있으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에는 ‘죄가 소멸되는’ 성격의 법안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2018년 3월 30일, 교육공무원법 개정으로 성범죄 교원의 징계 시효가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되었다. 이례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 적용 현장에서는 전면적 개정이 아직 진행되지 않았고 적용 대상이 구분되면서 사건 접수 및 문제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다. 개정된 법령에 적용받는 대상은 국·공립 대학 교수에만 해당되며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적용 대상을 개정 이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만 한정 짓는 것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2) 정직 3개월


"K학교가 성희롱 및 성추행 추문 의혹이 불거진 교수 3명에 대해 중징계를 내렸다고 밝혔다. P교수(정직 3개월)는 수업 중에 여러 차례 성희롱 발언을 통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했다는 사실이, K교수(정직 1개월)는 여학생들을 상대로 성관계와 관련된 농담을 하는 등 성희롱한 사실이 인정됐다 (...)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학생 인권침해 및 성폭력 의혹을 받는 S대 H교수에겐 2번의 걸친 징계심의 끝에 지난달 1일 정직 3개월 징계가 내려졌다 (...) 올해 3월 제자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나온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K 교수에 대해서도 정직 3개월 처분이 내려질 것이란 전망에 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현행 징계양정에서는 과거 동일 사건에 대한 징계 수위를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정직 3개월 다음 수위가 바로 해임·파면이라는 점은 적절한 수위의 징계를 내리기 힘들게 만든다. 교육부는 2012년부터 2017년 6월까지 징계가 내려진 80명의 교원 중 42명(52.5%)이 정직 3개월 이하의 경징계를, 11명(13.75%)이 파면, 27명(33.75%)이 해임 처분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여기서 경징계인 견책·감봉 처분과 중징계인 해임·파면 사이에 속해 있는 ‘정직’은 최대 3개월로 그 실효성이 전혀 없다. 일부 대학에서 정직 3개월은 온정주의적 판결을 내릴 때 적용된다. 심지어 일부는 수사 기관과 정부 기관, 그리고 대학당국으로부터 ‘중징계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징계위원회에서 뒤집어 정직 3개월 이하의 판결을 내린 경우도 존재한다. 정직 3개월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사건에서 발생한 피해 정도와 괴리되기 때문이다. 3개월의 시간은 방학 한 번 지나면 끝나는 기간이다. 가해자는 징계를 받아도 곧바로 교단에 복귀해 학문공동체라는 비극적인 공간에서 피해자를 마주할 제도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셈이다. 사건 발생에서부터 신고까지, 접수에서부터 판결까지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겪은 심적·물적 고통과 좌절이 다시 한 번 무너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판결의 현실성과 더불어 애매한 기준의 징계양정을 다원화하는 것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3) 징계위원회의 구성


“학생에게 차량 운전을 시키고 성희롱과 폭언을 한 의혹이 제기된 S대 H교수는 2차례 열린 징계위원회에서 모두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습니다. 대학원생 열 명이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자퇴서를 제출하는 등 반발했지만 학교 측은 징계 절차나 징계위원회 명단도 감췄습니다 (...) 국회의원실을 통한 정보 공개 요청을 통해 S대가 내놓은 자료를 보니 징계위원 8명 모두 교수 신분이었습니다. 교수를 교수가 벌주는 구조였던 겁니다. 징계와 관련된 규정에 대해 서울대가 준용하는 사립학교법에선 징계위원회를 외부교수와 법조인, 공무원, 교육전문가 등 다양한 직군으로 구성하게 돼 있습니다. (...) 이런 식으로 열린 징계위는 최근 2년간 교수의 갑질과 연구부정 등과 관련해 12건을 심의했습니다. 그중 8건만 징계를 내렸는데 5건이 견책과 감봉 같은 경징계였습니다."

위계형 성폭력 사건의 온전한 판결을 가로막는 교원 징계시효와 징계양정은 징계위원회에서 실행된다. 징계위원회는 징계위원장의 자의적이고 편파적인 위원 구성에서 가장 큰 문제를 보인다. 성비가 균등하지 않고 학생과 전문 위원이 포함되지 않은 위원 구성으로 인해 수사와 판결 과정을 견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하에서 위원 구성 및 논의 과정의 비공개 원칙은 피해자마저 알지 못하도록 하는 상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가해자의 편을 들기 쉬운 기구로 전락할 가능성을 담은 징계위원회는 이전부터 많은 지적을 받아왔으나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다.


2) 대학 외부의 쟁점


①징계 불복 절차와 ②법적 대응에서의 쟁점은 대학 외부에서 사건의 온전한 판결을 방해하는 요소로 자리한다. 우선 대학 내 절차를 통해 적절한 징계를 부여하더라도 가해 교수는 교육부와 국가인권위원회, 행정소송 등 대학 외부의 불복 절차를 통해 지위를 회복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교원소청위원회는 교원의 징계 처분에 대한 소청 심사를 담당하고 있는 교육부 내 부서로, 결정 유형은 각하, 기각, 처분 취소 또는 변경, 무효 확인으로 분류되고 교육기관의 장은 여기서 이뤄진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외부 기관에 의한 번복 결정 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가해 교수의 소청 사실에 대해 대학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이 아닌 징계절차상의 하자를 중심으로 판결을 내리면서 가해 사실을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외부 불복 절차에서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시 행정 소송을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사건을 처리하는 방법 중에서 피해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 하나는 법적 대응이다. 법적 대응은 판결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길고 사건 대응 정도에 따라 비용이 매우 높게 요구될 수 있다. 준비는 사건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나 진술의 진위를 입증해 줄 증인이 확보되었는지 충분히 검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서 증거는 물적 증거만이 아니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도 포함한다. 성폭력 사건은 증거를 남기기 어려운 탓에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그 내용의 합리성과 논리성도 사건의 진위를 입증하는 증거로 적용될 수 있다. 가해자의 처벌과 피해배상 사이에서 형사소송을 진행할 것인지, 민사소송을 진행할 것인지, 아니면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진행할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성폭력 사안이나 대학의 특수성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변호사를 통해 자문을 받을 경우 법리적 조건을 검토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성폭력 사건 전담 변호사나 관련 기구의 지원을 통해 진행해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4. 마치며


양상과 쟁점을 통해 본 대학 미투 운동은 위계형 성폭력 사건을 중심으로 피해자와 연대 공동체가 함께 대학의 권력구조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며, 그 과정에서 직면한 대학 내 제도적 방해 장치와 대학 외부의 방해 장치를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는 또한 대학 질서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과정이고, 현재의 부조리한 구조를 변화시켜야 하는 당위를 더욱 단단하고 명확하게 다지는 과정이다. 여기서 몇 가지 특징이 관찰된다. 첫째, 교수-학생 사이의 극단적인 종속 관계가 위계형 성폭력 사건의 신고를 억제하여 교수로 하여금 더 쉽게 범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만든다. 학위 여탈권과 각종 추천권, 조교 임용권 등의 권한이 교수에게 극단적으로 부여된 구조는 사건이 은폐될 수밖에 없는 토대를 제공한다. 둘째, 동일 계층, 그중에서도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은 가장 빈번하게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권력이 작용하지 않았다고 치부되거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학의 구조적 모순과 동일 계층 내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을 포괄하기 위해서라도 위계관계는 직업적 구분을 넘어 개인, 집단이 ‘위치한 자리’를 중심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셋째, 2차 피해는 가해자 개인의 권력과 현 대학 제도의 비호를 통해 발생한다. 그러므로 대학은 단순한 행정 기관이 아니다. 비정상적 위계구조 및 각종 범죄의 가능성을 유지, 재생산하는 구조를 만들어 온 하나의 주체로 보아야 한다. 대학이 사건 처리 기구를 운영하는 데 책임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대학은 징계위원회의 기계적 구성, 비위 사실에 대한 소극적 적용 등 그동안 사건 해결에 장해가 되어 온 요소들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부과하며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넷째, 새로운 형태의 연대 공동체가 등장했다. 기존 학생회 중심의 대응 형태에서 벗어나 피해자 중심의 사건 대응 모임이 많이 구성되고 조직 간의 연대를 통해 실무역량과 사건 처리 과정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학 미투 운동의 이러한 특징적인 모습들은 대학문화의 실질적인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론을 걱정하며 대중성에 매이고, ‘우선/나중’의 정치적 중요도를 구분 짓고, 기득권을 설득과 협상의 대상으로 보며 제도권 편입과 배제의 성격을 지닌 기존 개인, 조직 중심의 운동 형태가 주도적이지 않다는 점이 가장 이례적이다. 억압받는 약자 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공동체와 성별을 뛰어 넘은 학생 간 연대, 직업을 뛰어 넘은 여성 간 연대는 대학 문화 전반에 뿌리박힌 위계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저항하는 주체’로의 자기 정체화가 가능해지고 거대권력에 부딪힐 수 있는 공동체적 기반이 마련된 상황에서, 현재 대학 미투 운동은 학생 집단을 포함한 억압받는 약자 집단의 정치적 주체화를 향해 가는 중이다. 정체성의 정치가 “억압받는 개인이 억압받는 약자의 집단에 자신을 ‘소속’시키는 과정”이라면, 정치적 주체화는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 억압받는 개인을 ‘할 수 있는’ 상태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다. 그렇기에 대학 구성원들의 정치적 주체화 과정은 평등 안에서의 새로운 질서를 위해 권력을 재구성하는 과정과 동일하며 그 무엇도 은폐할 수 없는 사회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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