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구슬아 (2018) 대학원생의 노동과 인권, 자기인식 그리고 대학의 재구성

작성자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작성일
2019-01-28 16:58
조회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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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원생의 인권‧노동권 문제

여기서는 우선 복수의 사례를 통해 대학원생들이 처해있는 문제적 현실의 면면을 살피고 공통의 특성을 추출한 후 그러한 현실의 특성이 어떤 객관적 조건으로부터 기인하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대학이나 교수, 학생을 특정하는 고유명은 표기하지 않았으며 언론에 보도된 사건은 구체적인 내용을, 그렇지 않은 경우는 피해 당사자의 특정성을 소거하거나 복수의 사례를 종합하는 등의 재구성을 거친 내용을 적었음을 밝힌다.

1) 인권 문제 현황

① 폭언 및 욕설에 의한 인격 모독 “쓰레기다.”, “정신이 썩었다.”, “너는 좀 맞아야 해.”, “누구는 사회생활을 해 본 티가 나는데 너는 도대체 어떻게 하냐.”, “지금 조교들은 알아서 기고, 지킬 것은 지키고 해서 마음에 든다.”, “공대 애들은 군기가 바짝 들었는데 우리 과 애들은 엉망이다.” 등. 모 대학교 H교수가 대학원생을 상대로 해 온 지속적 폭언 및 인격 모독 발언의 일부이다.

② 폭행 ㄱ대학교 B교수는 지시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골프채, 소주병 등으로 대 학원생을 폭행하였다. 사람들에게 2015년의 소위 ‘인분교수 사건’은 대단히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사례로서 회자되지만 그 경과를 살펴보면 처음에는 피해자의 업무 수행 능력에 대한 폭언과 욕설로부터 시작되어 마지막에는 별다른 구실조차 없이 비닐 봉지를 씌우고 호신용 스프레이를 분사하는 등 차츰 그 폭력의 수위가 높아지는 일련의 단계들이 있었 음을 알 수 있다.

③ 성희롱, 성폭력 최근 대학 내 미투 운동에 의해 수면 위로 드러난 피해 사례가 여럿 존재하므로 이 항 목을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겠다. 다만 2013년부터 2017년까지의 대학 내 위계에 의한 성범죄 발생 현황을 보면 신고‧접수된 성희롱이 167건, 성추행이 133건, 성폭행이 20건 에 달 한다. 또한 다른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를 경험한 학생 중 90% 이상이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즉 열 건 중 한 건만이 공론화되는 것이다.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 수치심이 들어서, 비밀유지에 대 한 염려 때문 등이 꼽혔다. 실제 피해 당사자가 형사 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동료 교수 들이 가해 교수의 선처를 읍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거나 학과 내 따돌림, 평소 행실에 대한 비방 유포 등을 주도하여 2차 피해를 입히는 일도 많다.

④ 각종 자유에 대한 침해 학과 차원에서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는 복장‧용모 및 생활 전반에 대한 단속, 단체 기합 등 소위 ‘군기 잡기’를 방조하거나 적극적으로 그에 동조하는 경우. 이공계 실험실에서는 실험 운영을 위해 근무 시간 외 주말이나 공휴일에 사적인 일정을 잡지 못하게 강요하는 사례도 존재한다.

2) 노동권 문제 현황

① 업무 시간 관련

모 대학교 XX학과의 조교는 퇴근 시간인 6시 이후에도 사무실에 남아있어야 한다. 학과 교수 중 한 사람이 “이번 학기에 내가 야간 수업을 맡았다. 필요할 때 불러야겠으니 수 업이 끝나는 9시까지 사무실에 있어라.”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늦은 밤이나 주말에 핸 드폰 문자로 이런저런 업무 지시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금요일 퇴근 쯤에 “월요일 까지 이걸 타이핑 해 오라.”는 등의 업무를 지시하여 주말에도 쉬지 못했다. ◈◈대학교 ㄱ교수는 새벽 4시에 학과 조교에게 문자를 보내 “내일 골프장에 갈 수 있 도록 미리 내 차를 모처에 대기 시켜 놓으라.”는 등의 지시를 상습적으로 하였다.

② 업무 경계 관련

◎◎대학의 수업 조교 A는 대형 강의의 중간‧기말 시험지 채점 보조를 조건으로 B교수 에게 배정되었다. 그러나 이후 B교수의 지시에 의해 수업 내용에 대한 학생의 질문에 답 변 해 주기, 16주 분량의 강의 교안 만들기, 중간‧기말 고사의 객관식, 약술, 논술 문항 출제, 채점, 학점 입력, 학점 이의 신청 답변 등 사실상 강의 하나를 오롯이 운영하는 역할을 하였다. 아침 9시에 교수의 연구실로 출근하여 밤 8시 정도에 퇴근하는 것이 일 상이었기에 자기 공부를 할 시간은 늘 부족했다. 무엇보다도 “학부생들은 ‘교수님에게 배운다’고 생각할텐데 너무 미안하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괴로웠다고 한다.

② 사적 업무 지시

자택 청소, 이사, 대리 운전, 명절 귀향길 운전, 외유 기간 중 자택 관리, 딸 결혼식 주 차 안내, 개인의 전시회나 연주회 등 학과와 무관한 행사에 동원 및 참석 강제, 공과금 납부 심부름, 쇼핑에 동행할 것 강요, 골프장 예약, 세탁물 수령 등.

③ 종합적 문제(①+②): 학회 간사 학회지를 발간하거나 학술 행사를 할 시 누군가의 손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규모가 크고 재정이 탄탄한 학회는 별도의 직원을 채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해당 학회 임원을지 도교수로 두거나 ‘친밀한’ 관계에 있는 대학원생이 학회지 발간을 위한 원고 접수, 편집, 교정, 출판사 및 인쇄소와의 협의 등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행사 당일 실무(다과 준비, 접수대 운영, 기자재 점검, 회식 장소 예약 등 갖은 잡무)에는 더 많은 사람이 필 요하다. 이때 학회의 핵심 교수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 대학원생들이 차출, 투입되기 도 한다. 학회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1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적게는 0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가량이 대학원생에게 주어진다.

2. 문제 상황의 분석 그리고 제언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축적된 대학원생의 연구 환경 전반에 관한 실태조사들을 종합 해 보면 상황은 보다 뚜렷해진다.

위 표에 나타나듯 지도교수의 사적 업무 지시를 경험한 대학원생은 평균적으로 14.7%정도이고 폭언‧협박 및 인격모독, 폭행 및 신체 위협, 성희롱‧성추행을 포함한 인권 침해를 경험한 대학원생 중 평균 55.5%(최저값으로 환산) 가량이 그에 대해 참고 넘어가거나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무조건적 인내가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구체적 사례와 통계를 통해 확인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인권 침해는 기울어진 사회적 권력 관계, 즉 위계를 조건으로 하여 발생한다. 특히 교수가 학생과 생활 반경을 공유하는 동시에 학위와 진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장학금, 학내 연구보조원 및 조교 자리와 관련된 추천 권한을 지니는 대학원에서 그러한 위계는 전인격적인 동시에 전일상적이다. 인권 침해에 관한 문제 제기가 곧 교수의 권위 자체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학계 전반의 분위기는 사안의 공론화를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원생은 “학계를 떠나게 되더라도 감수하겠다.” 정도의 각오가 서야만 비로소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말할 수 있다.

둘째, 인권 침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 공공의 제도적 기반이 여전히 부족하다. 2017년 기준 전국 97개 대학 중 인권센터가 설치된 곳은 19군데(19.6%)에 불과하다. 물론 현재 인권센터 설치 학교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나 “그 역할과 기능에 관한 표준 모델이 없다 보니 실제로 유의미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례는 극히 일부”이다. 일반적으로 현재 운영 중인 인권센터의 기능은 사건 접수 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이에 기반한 징계안을 교내 징계위원회에 ‘권고’하는 정도에 그치는 형편이며 어디까지나 대학 본부에 소속된 기관이기에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이러한 한계는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교내 성평등센터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게다가 교원징계위원회는 재단 이사와 교수를 중심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인권 침해 사안에 대해 보수적인 징계 결정을 내리기 쉽다.

학내 피해자 구제 기구의 종속성과 징계위의 보수성을 이야기했으나 사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 어디에도 ‘전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대학 내 성폭력 상담소 상담원의 고용 형태는 정규직이 20%에 불과한 반면, 무기 계약직은 12.6%이고 기간제 계약직은 53.7%에 달한다. 실무자가 이토록 불안정한 지위에 있으니 학교 별 특성과 조응하는 전문성이 축적될 수 없고 보직 교수의 눈치를 보거나 학교 본부의 압력에 휘둘리다 2차 피해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징계위를 구성하는 교수와 재단 이사는 각각 특정 학문 분야와 법인 운영의 전문성을 담보하는 인사이지 인권 침해 사안을 다루는 데 있어 필수적인 역량을 갖춘 인사가 아니다.

모두에서 편의를 위해 인권과 노동권 문제를 구분하여 기술하긴 했으나 대학원생의 삶 속에서 이 두 권리의 상당 부분은 중첩되어있다. 난점은 (일단 그것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 “대학원생은 인권을 지닌다.”는 명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없으나 “대학원생은 노동권을 지닌다.”는 명제에 대해서는 아직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필수적인 공론의 본격적 단계에 진입하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겠다. 반면 대학원생 당사자들의 노동자로서의 자기 정체감 수준은 상당히 높다.

이처럼 두 차례의 설문 결과 모두는 전체 응답자 중 절반을 넘는 인원이 자신의 노동자 정체성을 긍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로 대학원생들이 대학 안팎에서 다양한 형태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사회계 대학원생은 RA(연구조교) 및 TA(수업조교), 연구보조원, 학회 간사로, 이공계 대학원생은 대학 연구실에 소속되어 정부 및 기업이 발주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정부 출연연에 소속되어 학생연구원으로 일하는 형태가 대표적이다. 그 외 기숙사 사감 혹은 사감 보조로 근무하는 형태, 산학협력 사업을 보조하는 형태, 도서관, 박물관 등 대학 내 부설기관에서 일하는 형태도 있다.

문제는 많은 경우 대학원생의 일을 ‘노동이 아닌 어떤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여기서는 그 대표적 사례로 인문‧사회계 대학원생들이 주로 돈을 버는 경로인 근로장학제도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명칭에 이미 나타나있듯 ‘근로’장학에는 근로가 그러니까 노동이 전제된다. 일을 해야 돈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원생은 ‘어디까지나 학생이기에’ 그 돈은 임금이 아닌 장학금으로 취급된다. 노동의 대가이나 학문을 장려하기 위한 돈. 이러한 정의로 인해 근로장학금을 위한 노동은 근로기준법의 관리 바깥에 위치하게 된다.

근로기준법은 헌법 제32조를 그 근거로 삼는다. 헌법 제32조는 노동기본권을 명시하는데, 1항의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와 3항의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는 대목이 핵심이다. S대학교는 2017년까지 학과 사무실 조교를 근로장학생으로 운영했는데, 장학금은 3달에 한 번 지급되었으며(임금이었다면 정기불 원칙 위반으로 체불에 해당) 그 액수는 240만원 안팎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직원들과 똑같은 행정일을 처리하는 것은 물론, 학과 별 고유 행사까지 챙기고도 시급 5,060원(최저임금법 위반) 정도를 받은 것이다. 물론 연장‧야간근로 가산수당, 퇴직금도 받지 못하며 연차에 대한 권리 역시 주장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2조 중 “근로자”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말한다.” 이는 곧 정신노동이든 육체노동이든, 상용직이든 일용직이든, 근로계약의 형식이 어떻든 그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일에 대한 대가로서의 성격을 지니는 보수를 받으며 사용자의 지휘나 관리 하에 그가 원하는 내용의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노동자성 인정에 관한 최근의 판례(대법원 2006.12.0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등)들은 사용종속관계, 기본급이나 고정급 여부, 근로소득세 원천 징수 여부, 사회보장제도 가입 여부 등에 대해 종전에 비해 보다 현실적이고 유연한 해석을 제시하는 추세이다. 또한 ‘대학원생은 학생이기 때문에 그들이 수행하는 온갖 일은 배움의 과정이지 결코 노동이 아니’라는 통념이 있는데, 대법원에서는 이미 피육자적 지위가 병존하는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현장실습생, 인턴, 레지던트 등에 대해서도 그 노동자성을 인정(대법원 2000.01.18. 선고 99다48986 판결 등)한 바가 있다. 즉 사법부의 판단에 있어서도 노동자냐 피교육자냐는 절대적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 적용 시점의 실질적 역할 수행에 따른다는 것이다.

노동임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의 처지는 전적으로 사용자 및 관리자의 인격과 처분에 의해 좌우되곤 한다. 1. 대학원생의 인권‧노동권 문제에서 확인했듯 지시해도 되는 일과 안되는 일, 적정 노동 시간과 임금 등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일하는 대학원생의 기본권은 언제든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을 기해 가속화된 대학의 기업화 경향은 대학원생의 노동력을 대학의 유지와 재생산에 필수적인 요소로 배치하는 과정을 동반하였다. 예를 들어 C대학교의 한 해 예산 중 33% 가량은 각종 프로젝트의 오버헤드로 구성되는데, 분명 이 안에는 연구 책임자로서의 교수의 기여분은 물론, 그 진행과 운영에 투여된 대학원생들의 노동의 기여분이 공존한다. 현실이 이렇다.

3. ‘교수’가 문제인가?

현황에서는 개별 사례를 언급하되 분석과 제언에서는 제도에 초점을 맞춰 기술했던 발제의 형식이 저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한다.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현상을 관찰했을 때, 안타깝게도 대학원생의 기본권에 대한 침해는 보통 교수에 의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학계의 권력 작동 방식이 위계에 근거하고 있으며 조직 및 공동체의 문화에 크나큰 영향을 미침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들이 곧바로 대학 내 인권 및 노동권 환경의 개선을 위해 특정한 개인으로서의 교수‘들’과 그 직종 일반을 적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연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권력은 어디까지나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것이 건전한 방식으로 작동되게끔 하려면 개인이 어떤 위치에서 자행할 수 있는 힘의 구성 원리 등에 관한 파악과 조율을 고민하는 편이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현대의 이른바 ‘민주적 사회’라는 가정은 개별 구성원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성립하며 여러 사회적 약속과 제도의 형식은 그러한 가정 하에, 그 실현에 대한 지향을 어느 정도 강제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있다. 분명 대학에는 여타의 장(場)들과 구별되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학문적 자율성에 관한 존중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인 인권, 노동권에 대한 침해마저 학계 고유의 특수성이 발현되는 한 양태로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뿐이다. 실상 현재의 대학은 자본의 논리에 준하여 학문적 자율성은 제한하는 가운데 행정과 집행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중앙’에 속해야 할 권한과 재량 그리고 책임을 각 교수들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의 일반적 합의로부터 벗어난 이러한 운영은 대학을 ‘기본권의 예외 지대’로 만든다. 회사를 다니다가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들이 충격을 받곤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우선 학문적 권위와 과도한 권력을 구별하고 후자가 대학원생에 대해 절대적 영향을 행사하는 전인격적이고 전일상적인 위계로 연결되지 않도록, 자본의 분배를 결정하는 중앙의 대학 본부가 행정과 조직 관리 상의 책임을 지게끔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근로장학으로부터 빚어지는 노동권 침해는 교수라는 직종의 구성원들을 압박함으로써 해결 가능한 문제 유형이 아니다. 교수 개인이 자신의 학문적 자율성에 대한 믿음에 따라 연구와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즉 사회적 공공재로서의 지식이 생산되는 더 나은 객관적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절차는 필수적이다.

대학 본부에 대한 요구 수준의 상향 조정과 더불어 새로운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농담의 형식으로는 공노비와 사노비(석사 과정생은 공노비이고 박사 과정에 진학하면 사노비가 된다고 하더라), 교수의 ‘자동전투 모드’인 대학원생이라 표현되고, 좀 더 점잖게는 도제식 관계라고 불리는 기존의 관계, 즉 그 동안 지배적이었던 위계적 관계성을 무엇으로서 재구성 해 낼 것인가에 관한 논의가 학계 구성원들의 공통 지평 위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학문적 자율성에 대한 신뢰에 기반을 둔 자유로운 대학, 성숙한 학계는 바로 이러한 민주적 역량의 발휘를 통해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대학원생과 교수 사이의 관계가 ‘현대적’이며 ‘사회적’인 특성에 따라 명확하게 규정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한다. 앞서 제시된 대학원생의 노동권 인정에 관한 언급이 바로 이 사회적 관계의 규정 문제에 있어 유의미한 사유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제도와 문화·환경의 관계는 상호배타적이지 않다. 쉽게 말해 제도는 구성원들이 적절한 방식으로 행위하도록 유도하고 역량을 부여할 수 있으며, 이러한 방법을 통해 환경과 공동체가 특정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또한 공동체의 내적 역량으로서의 자율성은 공동체의 존재로부터 자동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갖가지 제도가 형성해놓은 환경을 토대로 그 구성원들이 주체성을 발휘하는 가운데 고유의 영역을 구축함으로써만 가능하다.

3.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결성의 계기들과 그 과정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은 지금까지 기술한 문제 의식, 분석적 관점, 대학의 재구성을 위한 전략적 지향을 현실 속에 기입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1) 계기들-정세

2014년 강남대학교 인분교수, 2016년 서울대 8만 대장경 스캔 지시, 복수의 연구비 및 인건비 횡령, 각종 위계에 의한 성범죄 등 대학원 내 사건 사고에 대한 언론 보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2015년 11월부터 고려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의 웹툰 사업인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이 게시되기 시작함에 따라 대학원의 문제적 상황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환기되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이하 전원협)>의 정책 제안을 받은 교문위 노웅래 의원실이 대학원생의 노동권 및 인권 제고를 목적으로 한 세 가지 법안이 발의하였다. 또한 <ESC>를 위시한 이공계 연구자 단체와 청와대 문미옥 비서관의 협력에 따라 정부출연연구기관 학생연구원들의 노동자성 개념이 제도 내로 진입하게 되었다.

2017년 11월 동국대학교 총장에 대한 대학원생 행정조교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 고발 건에 관해 고용노동부가 “대학원생 조교의 근로자성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행정 해석을 내놓음에 따라 해당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된다. 여론 형성, 당사자 자치 단위 활동, 법안 발의, 행정적 선례 확립 등 대학원생의 인권 및 노동권 의제가 사회적 층위에서 구성,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덧붙여 2016년 미국 연방노동위가 “대학원생이 대학이 관리하는 일을 수행하고 급여를 받는다면 이들을 피고용인”인 “지식 노동자”로 봐야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립대학교 대학원생들의 단결권(즉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을 인정하였고, 이후 대학원생노동조합이 빠르게 조직되었다. 그 결과 현재 북미 전역에는 약 60개 대학에 대학원생노동조합이 존재하며 총 조합원 수는 10만 명에 달한다.

2) 과정 및 경과

△ 동국대학교대학원총학생회 회장이자 ‘동국대 총장 근로기준법 위반 사항 고발’건의 고발인 이었던 신정욱 현 사무국장이 당시 대학원생의 인권 및 노동권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을 했던 여러 단위들과 접촉, 간담회를 개최한다. 수 차례의 간담회 결과, 개별 사안들 사이에 서 대학원생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특성, 피해의 양상, 구조적 모순 등 일련의 보 편성을 확인하게 된다. 상술한 정세들에 대한 분석을 포함한 숙의의 과정에서 이러한 공통 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노동조합의 조직 형태가 유효할 것이라는 합의에 도달, 이후 노 동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로 그 형태를 전환한다.

△ 2017년 12월 23일 설립 총회를 거쳐 임원을 선출하고 규약을 제정

△ 2018년 1월 17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설립을 언론에 공개

△ 2018년 2월 24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출범식

△ 2018년 4월 30일 제1차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정기 총회에서 규약 전면 개정 및 수석부위 원장, 사무국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 회계감사위원 선출. 2018년도 사업 계획 및 예산안 승인 절차를 거쳤다.

3) 향후 계획

△ 대학원생의 인권‧노동권 보장을 위한 정책 제안

△ 대학원생의 교육권 제고 및 대학 교육 공공성 확보를 위한 사업

△ 대학원생 당사자의 권리 주장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사업

△ 대학원생의 노동 그리고 연구노동 개념 정립을 위한 학술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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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경 (2018) 대학원생의 업무별 노동자성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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